“암 치료가 드라마틱해질 순간은, 내 안의 면역세포가 다시 깨어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수십 년간 과학자들은 암이라는 ‘불치’의 벽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무리 강력한 항암제를 개발해도 암세포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최근 10년, 암과의 전쟁에서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우리 몸이 가진 면역 시스템이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국내 면역학 권위자인 카이스트 신의철 교수의 설명과 최신 연구를 기반으로, 지금 전 세계가 주목하는 ‘면역항암제’의 개념과 가능성, 최신 트렌드를 쉽고 명료하게 살펴본다.
우리 몸속에서 암세포가 매일 같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정상적인 면역 시스템은 매일 암세포를 찾아 제거한다. 이것을 면역 경비 가설이라 부른다. 면역력이 약화된 에이즈 환자나 장기 이식 후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는 환자에게 암이 흔히 나타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핵심 원리는 PD-1과 PD-L1이라는 단백질이 만들어내는 ‘악수’이다. 암세포가 면역세포(T세포)와 악수를 하면, 면역세포는 기능을 잃고 탈진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악수를 끊는 약물(항체)을 만들었고, 이로써 면역관문 억제제가 탄생했다.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PD-1과 PD-L1의 연결고리를 끊는 면역항암제 개발에 수여되면서, 면역항암제의 가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면역관문 억제제는 암세포가 T세포를 속여 기능을 잃게 하는 걸 막아, 우리 몸이 다시 스스로 암을 공격하도록 돕는 치료제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다. 그는 악성 흑색종이 뇌에 전이돼 생명이 위급했으나, 면역관문 억제제 투여 이후 암이 완전히 소실됐다.
국내에서도 폐암, 간암, 신장암, 흑색종 환자를 중심으로 이미 사용 중이며, 환자의 약 20%에서 암이 완전히 사라지는 놀라운 결과를 보이고 있다.
면역관문 억제제는 기존 화학항암제와 달리 정상 세포를 거의 손상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한계도 존재한다. 전체 환자의 약 80%는 충분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자가면역 반응(예: 백반증 등)의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신의철 교수는 “반응률을 높이고, 부작용을 제어하는 연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